[이사람] "한 분야서 한국 최고 되니 다른 바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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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19-12-11 16:04본문
부천 조마루(원미동 일대의 옛이름)를 전국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인물이 있다. 원미구청 인근에서 조마루 뼈다귀 감자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마루 이영복(61) 회장이다.이씨는 1988년 조마루감자탕 식당을 창업한 후 20년 만인 현재 전국 250여 개의 가맹점에 연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전국 주요 도시 어디에 가든 조마루감자탕 식당이 없는 곳이 없다.
"조마루란 원래 조가 많이 심어져 있는 언덕 위의 평야와 조씨가 몰려 살았던 집성촌에서 지역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역의 정서가 담겨 있는 향토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상호에 조마루란 이름을 쓰기로 했지요."
1981년에 부천으로 이사온 이씨는 원미시장에서 원미동과 춘의동 일대의 회사와 식당에 식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1988년에 거래처인 70대 할머니로부터 식당을 인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거래처 회사 관계자들과 한밤중에 술을 마신 후 부천역 인근의 감자탕집에 들렀더니 손님이 넘쳐나더군요. 납품대금 수금이 잘 안 돼 고심하던 차에 감자탕 식당을 하면 되겠다 싶어 무릎을 쳤지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자탕 식당을 개업했다. 1년 넘게 직접 음식 개발에 나섰다.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해 기름기를 제거하고 돼지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기를 삶는 등 노하우를 쌓아갔다. 인근에 공장이 많아 야근을 하는 근로자들과 택시 운전사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음료수를 서비스하고 값을 할인해 주면서 음식 맛을 점검해 그때그때 맛을 개선했다. 부천과 영등포 일대의 감자탕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노력 끝에 개업 2년 만에 조마루만의 감자탕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즐길 수 있게 24시간 영업 체제로 했다. 10여년 전부터는 전국으로 가맹점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씨는 충북 출신이지만 이사온 지 3년 만에 "부천 사람이 되겠다"고 부천으로 호적을 옮겼다. 전국적인 기업이 됐지만 본사를 서울로 옮기지 않아 매년 부천시에 수억원의 세금을 내 시의 살림살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단체 등에도 매년 수천만원씩을 기부한다고 했다. 먹고 살겠다고 가맹점을 내달라는 부천 토박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부천에 조마루감자탕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사업 성공 후 부천에서 인정을 받으니 나름대로 뿌듯합니다. 얼마 전 자식 결혼 때 시장과 구청장 등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부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씨는 식당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최소한 2~3년은 육체적으로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돈을 들여 멋진 인테리어 시설을 갖추고 편하게 장사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주인이 노력하지 않는데 어느 종업원이 열심히 일을 하나요. 저도 초창기에는 음식 맛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가맹점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상황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한 달간은 자신의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끔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면에서 한국의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의 바람은 없습니다. 최근에 회사 사무실 이전 준비와 업종 확장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 건강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조마루란 원래 조가 많이 심어져 있는 언덕 위의 평야와 조씨가 몰려 살았던 집성촌에서 지역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역의 정서가 담겨 있는 향토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상호에 조마루란 이름을 쓰기로 했지요."
1981년에 부천으로 이사온 이씨는 원미시장에서 원미동과 춘의동 일대의 회사와 식당에 식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1988년에 거래처인 70대 할머니로부터 식당을 인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거래처 회사 관계자들과 한밤중에 술을 마신 후 부천역 인근의 감자탕집에 들렀더니 손님이 넘쳐나더군요. 납품대금 수금이 잘 안 돼 고심하던 차에 감자탕 식당을 하면 되겠다 싶어 무릎을 쳤지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자탕 식당을 개업했다. 1년 넘게 직접 음식 개발에 나섰다.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해 기름기를 제거하고 돼지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기를 삶는 등 노하우를 쌓아갔다. 인근에 공장이 많아 야근을 하는 근로자들과 택시 운전사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음료수를 서비스하고 값을 할인해 주면서 음식 맛을 점검해 그때그때 맛을 개선했다. 부천과 영등포 일대의 감자탕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노력 끝에 개업 2년 만에 조마루만의 감자탕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즐길 수 있게 24시간 영업 체제로 했다. 10여년 전부터는 전국으로 가맹점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씨는 충북 출신이지만 이사온 지 3년 만에 "부천 사람이 되겠다"고 부천으로 호적을 옮겼다. 전국적인 기업이 됐지만 본사를 서울로 옮기지 않아 매년 부천시에 수억원의 세금을 내 시의 살림살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단체 등에도 매년 수천만원씩을 기부한다고 했다. 먹고 살겠다고 가맹점을 내달라는 부천 토박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부천에 조마루감자탕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사업 성공 후 부천에서 인정을 받으니 나름대로 뿌듯합니다. 얼마 전 자식 결혼 때 시장과 구청장 등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부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씨는 식당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최소한 2~3년은 육체적으로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돈을 들여 멋진 인테리어 시설을 갖추고 편하게 장사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주인이 노력하지 않는데 어느 종업원이 열심히 일을 하나요. 저도 초창기에는 음식 맛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가맹점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상황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한 달간은 자신의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끔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면에서 한국의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의 바람은 없습니다. 최근에 회사 사무실 이전 준비와 업종 확장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 건강을 회복했으면 합니다."